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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으로서 안다는 것, 그리고 나태함

최근에 한 지인의 고민을 들어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최근에 본인보다 높은 경력의 사람들과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만큼 일을 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구성원으로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하였다.

당연히 경력이 차이나는 만큼 실력이 차이 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학생 때부터 알아 온 그의 성실함과 자기계발에 대한 열정을 알기 때문에 그가 받는 스트레스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필자는 그 일 이후에 집으로 오는 길에 대화를 곱씹어 보면서 “지식인으로서 안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시작하였다.

차라리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바보였다면 현상만을 바라보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톨이라도 알고 있는 지식은 현상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시간, 기술 등의 제약으로 현상의 원인, 그 원인의 원인을 모두 파헤쳐 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어느 선에서 탐구를 끊고 결론을 지음으로써 하나의 목표달성으로 갈무리짓는 능력은 지식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이런 문제는 지식이라는 것이 무형 자산이기에 발생한다.

이렇게 지식인은 계속 지식을 하나의 그림과 같이 스스로 배치하고 조성해나가며 그 지식 간에 경계를 설정하면서 지식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순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성찰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관조하고 통합하되 지식계 전체를 둘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인은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아는 것이 전부인마냥 세상을 좁게 보기 시작하고 검증/갱신하지 않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타인에게 진리로서 무작정 가르치려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모습을 지적인 나태함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꼰대라고 말한다.

지적인 나태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지속해서 성찰하고 학습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지적인 초조함이다.

세상의 변화가 점차 빨라지기 때문에 그 속도에 발맞춰가며 학습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그리고 학문의 통합 및 재편 역시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보다 지식인으로서 과거에 배워온 지식간의 경계보다 더 넓게, 그리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물론 이런 자유가 더 많은 책임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말이다. 

세상의 빠른 변화와 새롭게 통합되고 재편된 지식의 등장은 어느 하나의 논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세상을 만들었다. 결국 지식은 그 자체를 넘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 “지적인 나태함”이라도 경계하고 꾸준함으로 이런 문제를 지속해서 생각하고 해결해나가려고 한다. 시간은 우선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