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부터 켜라는데, 나는 무엇을 켜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서평은 제 주관적인 관점으로 작성했습니다.
불편함의 정체
나는 이 책의 독자인가. 책을 펼치기 전에 먼저 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저자가 상정한 독자는 분명합니다. 사업자 등록증은 있는데 매출이 0인 사람. 코딩은 모르지만 뭔가 만들고 싶은 사람. AI를 써야 한다는 건 아는데, 뭘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
저는 그 프로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AI 에이전트를 수십 개 운영하고, 매일 프롬프트를 깎고,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설계하는 게 본업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읽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불편함의 정체를 추적하다 보니, 이 서평이 됐습니다.
책의 구조는 깔끔합니다. 아이디어 구체화부터 시장 진입, 팀 빌딩, 사업 모델, 마케팅까지 5단계 매뉴얼. 각 단계마다 AI 도구와 프롬프트 예시가 붙어 있고, 저자의 현장 경험이 근거를 제공합니다. 야후, 카카오, 네이버 15년에 600억 투자 유치 — 가벼운 이력이 아닙니다. 특히 5장의 투자 유치와 정부지원사업 파트는 투자를 받아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질감이 있습니다.
"AI부터 켜라"는 제목은 행동을 촉구합니다. 실행이 먼저다, 완벽을 기다리지 마라, 켜고 나서 고쳐라. 맞는 말입니다.
곱셈의 앞자리
그런데 저는 전작 AI력을 읽으면서 정반대 방향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AI력의 공식은 이렇습니다.
인간의 역량 x AI의 확장력
곱셈이니까, 한쪽이 0이면 결과도 0입니다. "AI부터 켜라"는 곱셈의 뒷자리를 먼저 채우라는 조언입니다.
그런데 앞자리가 비어 있으면, 아무리 빨리 켜도 답은 0에 수렴합니다.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 왜 그 문제여야 하는가. 그걸 먼저 정하지 않으면, MVP는 만들었는데 아무도 쓰지 않는 앱이 됩니다.
이 책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4장입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7가지 핵심 역량." 저자도 결국 같은 곳에 도달합니다. 도구가 아무리 강력해져도, 문맥을 읽고, 모순을 발견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라는 것.
1~3장에서 "켜라"고 말하던 저자가 4장에서 "켜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말합니다. 이 전환이 책의 진짜 무게 중심입니다.
다만 그 무게 중심에 충분한 지면이 주어졌는지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11단계 프로세스에는 각각 프롬프트 예시가 달려 있지만, "어떤 사람이 이 프롬프트를 쓸 때 다른 결과가 나오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짧습니다.
레시피는 있는데, 재료를 고르는 눈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합니다.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해도, 출력을 해석하는 사람의 깊이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이미 도메인이 있는 사람이 AI를 지렛대로 쓸 때 이 책이 더 유용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두 권을 함께 읽으세요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출발점이되, 단독으로는 부족한 책입니다.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답은 충실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왜 만드는가"에 대한 답은 독자가 스스로 채워야 합니다. 이 책의 5단계 매뉴얼을 따라가기 전에, AI력처럼 "곱셈의 앞자리"를 먼저 점검하게 해주는 책을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도구 사용법만 익히면 방향을 잃고, 방향만 고민하면 아무것도 만들지 못합니다. 한 권은 방향을 잡아주는 책, 한 권은 실행을 밀어주는 책. 이 책은 후자로서 제 역할을 합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서 남는 건, 결국 하나의 질문입니다.
AI를 켜기 전에, 당신은 어떤 문제를 풀기로 정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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