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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기회로 만드는 AI력

변화를 기회로 만드는 AI력 Review

배경: AI 에이전트 33개를 운영하면서도 경영진 앞에서 "Generic하다"는 피드백을 받은 경험이 이 책의 질문과 정확히 겹쳤다. AI PM으로서 Doer와 Innovator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읽었다.

나는 AI 에이전트를 33개 운영한다. 사내 자동화 프로젝트도 여러 건 리딩하고 있다. AI를 꽤 잘 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불편했다.

저자 정규진은 AI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의 역량 × AI의 확장력." 합산이 아니라 곱셈이다. 곱셈이니까 인간 역량이 0이면, AI를 아무리 잘 돌려도 결과는 0이다. 이 한 줄이 사실상 책의 전부이고, 나머지 페이지는 이 명제를 현장 사례로 풀어놓은 것이다.

나는 이 정의를 읽고 잠시 멈췄다. 자동화 프로젝트를 마치고 경영진에게 보고했을 때, 돌아온 피드백이 떠올랐다. "자료가 너무 Generic하다." 기술 지표는 다 달성했다. 그런데 경영진 언어로 번역이 안 됐다. AI가 만든 초안을 내가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고, 내 판단이 빠진 자리에 AI의 평균이 채워졌다. 저자의 프레임으로 보면, 그 프로젝트에서 나는 Doer였다. 잘 실행했지만, 방향을 설계한 사람은 아니었다.

저자는 TRIZ 챔피언 출신이다. 26년간 200개 기술 난제를 현장에서 풀어온 사람이 "모순을 정의하고, AI를 모순 해결의 파트너로 써라"고 말하면, 그 무게가 다르다. 나는 Prompt Engineering을 프로그래밍이라고 봐왔다. AI에게 줄 지시문을 정밀하게 설계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엔지니어링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 지시문을 잘 쓰는 것도 결국 Doer의 영역이라고. Innovator는 모순을 먼저 정의하고, AI가 틀렸을 때 틀렸다고 알아채는 사람이라고. "끝난 건 타이핑이지, 엔지니어링이 아니다." 이 문장이 좀 아팠다.

다만 걸리는 것도 있다. 200개 사례 중 AI가 실제로 개입된 것이 얼마나 되는지는 본문에서 확인이 어렵다. TRIZ 자체가 진입장벽이 높은 방법론이라, 비전문가 독자에게는 추상적으로 남을 수 있다. 그 점은 솔직히 아쉽다.

책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한 대목은 협업 지능이었다. 답을 내가 정해놓고 AI에게 확인을 구하면, AI는 내 편향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장에서 자꾸 그렇게 쓰게 된다. 시간이 없으니까. 결론을 정해두고 AI에게 논거를 뽑아달라고 한다. AI는 거부하지 않는다. 그럴싸한 논거를 돌려준다. 그게 내 편향이라는 걸 AI는 모르고, 우리는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

AI에게 질문하는 건 쉽다. AI의 답에서 빠진 걸 읽는 건 어렵다. 전제, 한계, 불확실성. 저자는 이걸 듣기 지능이라고 부른다. 잡초도 환경에 따라 다르게 자라듯이, 같은 AI도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쓸모가 완전히 달라진다. 잡초를 탓하기 전에 질문을 먼저 봐야 한다.

솔직하게 따져봤다. 33개 에이전트와 여러 자동화 프로젝트. 이것들이 Doer의 결과인가, Innovator의 결과인가. 둘 다다. 그리고 그게 문제다. 기술 실행 레이어는 검증됐다. 만들고, 돌리고, 지표를 달성했다. 그런데 조직 전체의 AI 역량을 설계하고, 그 결과를 비즈니스 언어로 번역하는 일. 그 레이어에서 나는 아직 성장 중이다.

아는 것을 잘 아는 건 Doer의 몫이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건 Innovator의 출발이다. 택시기사는 하루에 160km를 달린다. 방향이 없으면 이동이 아니라 배회다. AI 시대에 속도는 누구나 낼 수 있다.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만 남는다.

이 책은 "AI 잘 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AI 시대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묻는다. 그 질문은 불편하다. 나처럼 AI를 매일 쓰는 사람에게 더 불편하다. 쓰고 있다는 사실이 Innovator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이 책은 조용히 지적한다.

나는 Innovator라고 생각했다. 읽고 나서 Doer도 꽤 섞여 있다는 걸 인정했다. 당신은 어떤가. 매일 AI를 열고 닫는 그 루틴 속에서, 방향을 잡고 있는가, 아니면 달리고만 있는가.

변화를 기회로 만드는 AI력 | 정규진 지음 | 민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