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은 부분과 전체를 인식할 때 아름답다.
출근길 아침이었다.
그렇게 출근을 선호하지 않던 날이었기 때문에 찌뿌드드한 몸을 이끌고 잠실역을 올라가고 있었다. 가뜩이나 거북목으로 휘어진 목이 갑자기 쑤셔서 그런지 의지로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린 직후여서 그런지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고 짙은 푸른색과 하얀색 사이 파스텔톤의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 출근하기에 바쁜 직장인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회사의 길에 사람들과 자동차, 건물, 그리고 가로수 나무 등을 가볍게 훑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하나하나씩 지긋이 쳐다보니, 이 많은 물체들이 적절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움직이는 것이 인식되었다. 뭐랄까 출근 시간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정말 많은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하면서 움직이는 모습에 순간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런 것들을 예측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더더욱 그런 감정이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디테일을 그리 잘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순간 왜 그런데 이 업무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 업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부분들이 연결되어 전체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 부분을 그대로 인식한다면 재미가 없지만 이 부분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전체를 만드는지 본다면 이 또한 하나의 스토리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시계열을 좋아하고 연속성을 따지는 내 모습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읽었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저자 구본형 님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삶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구체적이며, 매일 아침 눈을 비비고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것이 바로 삶이다. 그것은 지금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기도 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자체 이기도 하다. 📦 익숙한 것과의 결별 (10주기 개정판) - 구본형
잠시 생각의 관점을 바꿔서 이런 모습을 회사 내에서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는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피드백으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다면평가는 너무 진지하고 크게 생각하면 복잡해지기는 하나, 적어도 조직 내에서라도 피드백을 서로 오고 감에 따라 개개인의 디테일을 살리고 이를 전체로 통합할 수 있다면 꽤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뜩이나 갑자기 기존의 전문성을 뛰어넘어서 하나의 프로덕트 개발 리딩까지 커버하는 마당에 "하드 씽"의 저자 벤 호로비츠의 말을 듣고 위로받던 중인지라, 팀 내 이렇게 피드백을 적절히 상호작용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면 디테일은 더욱더 전체의 구성요소로 살아남을 수 있고 그 팀 내 응집도(Cohesiveness)를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지 마라. 당신에게 싦아스러운 일이라면 직원들에게는 더욱더 큰 실망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장 큰 책임을 진 사람보다 더 손실을 힘겹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어느 누구도 당신만큼 아프게 느끼질 않는다. 모든 부담을 나눌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모든 부담을 나눠라 - 📦 하드씽 (경영의 난제를 푸는 최선의 한 수) - 벤 호로위츠
이런 팀을 넘어 더 큰 조직을 이루는 경영자는 더 쉽지 않은 고민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강력한 리더의 한사람으로 알려진 나폴레옹도 리더십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리더가 받는 대우는 결국 이러한 고민의 대가일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공감대를 구성원들과 함께 나눠야 하는 것 역시 경영자로서 해야 할 당연지사일 것이다.
가장 강력한 리더의 한 사람으로 인류에게 부각되는 이 배짱 좋은 코르시카인도 어려움을 느꼈다 면, 앞에 서서 다른 사람을 데리고 새로운 길을 나서야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영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예우는 바로 이러한 어려움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가이다. - 📦 익숙한 것과의 결별 (10주기 개정판) - 구본형
하루하루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이제는 노력만으로도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서도 관성적으로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일 때가 있는데, 삶은 노력의 연속으로 채울 수 있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기에 가끔은 이렇게 격랑과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몰입해서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출근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