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아삼티 티백과 에센셜리즘, 그리고 컨텍스트

새벽 4시, 아이의 밤중수유를 위해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한달이 지나자 슬슬 아이가 울지 않아도 4시 20분 전후로 눈이 먼저 떠진다. 더 자고 싶은 욕구가 한껏 밀려오는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지난 주부터는 수유 전후로 차를 한 잔 마시기 시작하였다. 이미 아이 때문에 어느정도 각성이 된지라, 바로 잠을 자기는 어려운 것을 감안한다면 깨어있는 시간은 잘 활용하자는 측면에서 시작된 하나의 습관이었다.

문득, 이전에 아내가 선물받은 티백 세트가 있던 것이 기억나, 부엌 한 켠의 장을 열어보니 티백이 비닐팩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거기서 아무 차나 손에 집히는 데로 꺼내서 마시다 보니, 문득 이 티백의 과거가 기억이 났다. 이 티백은 아내가 선물 받은 것으로 포숑(FAUCHON)에서 나온 티백 셋트이다. 가격이 두자리수 였던 것으로 기억해서 박스에 넣고 고이 보관해두고 아주 가끔 손님이 올 때마다 꺼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집에 신생아가 생기고, 아이를 위한 물품(젖병 소독기기을 놓을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최근에 과감히 박스를 버리고 비닐봉지에 넣어서 구석에 박아놓았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지금 나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아침에 이 차를 꺼내서 먹고 있는 것이다.

불과 몇 주 사이 벌어진 이 차의 처지(Status)의 변화를 보다보니, 작년에 읽었던 에센셜리즘이라는 책이 기억이 났다. 에센셜리즘은 원칙주의로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에만 에너지를 발산함으로써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이를 성과로 이어나가는 기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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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관점에서 아삼티는 에센셜(Essential)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구석이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회사에서도 그렇다. AI서비스 관련 기능조직을 최근 1년 가까이 이끌다 보면, "XX개발팀","XX플랫폼팀"과 같이 이름 자체에서는 팀의 목적이 느껴지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유관부서와 끊임없이 과제 및 프로덕트를 논의하고 제안해야 하는 일을 하게 된다. 즉 아직 AI조직이 Essential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으로도 그렇고 조직적으로도 그렇고 Essential한 존재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팽당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Essential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그러한 일에만 집중하고, 그게 당장 보기에는 AI기술이 아니라 비즈니스 관점이더라도 집중하면서 회사의 지속가능성과 연관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팀리더로서 항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관점에서 목적조직이 된다는 것은 컨텍스트(Context)를 갖는 것과도 동일하다. 회사의 컨텍스트는 비전과 미션으로부터 시작하고 이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되 사업의 영속성을 보장해주기 위한 방식으로 사업에서 구체화가 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을 기술적으로 기술함으로써 조직의 컨텍스트로 자리잡게 된다. 현 시점에 대다수의 데이터조직은 여기까지 가는 것이 1차 목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를 돌파한 곳은 몇 안되는 빅테크기업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상당한 양의 돈을 투자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아삼티 한 잔에서 시작되어 잠이 오지 않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 아마 이런 생각은 가야할 길이 많은 리더의 불안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불안정성, 또는 불확실성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 어디인가 싶다. 아는 것만으로도 계량하고 개선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