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성과 원칙

삶의 방향성과 원칙
Photo by Alejandro Barba / Unsplash

주말, 아이를 데리고 서울을 서울을 벗어나 근교로 나가기 위해 운전중이었습니다.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긴장 속에 지도를 계속 주시하면서 간만에 운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과 남산터널로 가는 깃을 헷갈릴 뻔하여, 빠르게 가는 방향을 트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는 길이었기에 차가 없어서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도착지까지 가는 내내 내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저는 지도에서 굉장히 작은 단위의 도착지에 집중해서 큰 목표를 잊고 있었습니다. 내가 남산터널로 가는 중간 목적지를 잘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 순간에도 길을 헤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표지판에 주요 목적지는 항상 적혀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순발력이 좋지 않은 저였기에이렇게 목표를 잊고 있는 것은 결국 실패의 가능성을 높히는 상황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도착 예상시간이 길어지지는 않았지만, 길어졌거나, 또는 예상하지 못한 일(예: 사고)가 났다면 그날 내 감정은 틀어져서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길을 잘못 들어갈 때는, 차라리 돌아가서 갔는데 이 때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차가 없으니 망정이지, 이렇게 허둥지둥하는 운전은 함께 가는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상황을 유발할 수 있었습니다.왜 차선을 급히 변경하였을까요? 앞서 출발하기 전 사소한 일로 도착예상 시간이 10분 지연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가각합니다. 계획형인 저에게 있어 계획의 오차는 침착성을 흔드는 요인이 되었던 것같습니다. 하지만 그 오차는 실제로 크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도착장소로 전화를 하여 양해를 구하는 것이 비용상으로 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감정적으로 흔들린 상황에서는 이런 액션이 빠르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회고해보니, 이러한 경험은 회사 생활에서도 있었던 것같습니다. 방향성을 잊거나, 원칙을 어기는 부분은 현재 영향력이 저와 아이에게만 있고, 별 탈이 없었지만, 이런 일이 습관이 된다면, 이는 방향성을 무너뜨리고 기존의 원칙을 갱신하는 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 삶의 디테일을 그려보며 회사와 매칭해보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렇게 삶을 돌이켜보니, 고쳐야 할 부분이 보입니다. 이는 일류의 조건을 쓴 언어학자, 사이토 다카시의 의견과도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무라카미 히루키가 삶 전체를 작가로서 디자인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을 예로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도 우미영 대표의 저서 “나를 믿고 일한다는 것”을 예시로 들으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같습니다. 일과 삶은 결국 하나의 벤다이어그램에 속하면서 부분과 전체를 구성하기에 동일한 철학을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야기했던 방향성과 원칙도 그러한 관점에서는 이러한 회고가 업무에서도 개선되길 바라면서 이렇게 하루 경험했던 이야기 중 회고함직한 이야기를 정리해보면서 마음을 잡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