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적 리더십과 변혁적 리더십, 리더십에 이분법은 없다.

얼마전부터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을 조금씩 읽고 있다. 최근 들어 이 책 외에도 많은 책들을 읽고 있는데, 잊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글을 써서 남기려고 시도 중에 있다. 현재 "3부 리더의 탄생 -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이끌어가는가?"를 읽고 있고 오늘까지 해서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선언문을 작성하기 까지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워낙 유명한 분이기 때문에 상당한 부분의 일화를 알고 있었기에 리더로서 알고 있는 내용을 되새김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꽤 인상깊은 내용이 있었다. 바로 거래적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과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에 관한 내용이었다.

거래적 리더십은 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추종자들의 개인적 보상에 영향을 미치는 리더십의 형태이다. 거래와 교환 등의 실리적인 형태속에서 추종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추종자들의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이다.

이에 반해 변혁적 리더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개개인에 대한 형(Formation)에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개개인의 정체성을 중요시 여기는 대신 다른 객체, 예를 들어 국가, 공동체, 또는 추상적인 이념 등에 그들을 동일시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객체가 가야할 목표를 위해 희생수준의 의무를 요구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를 보고 개인주의를 넘어 이타주의를 우선시하도록 유도한다.

작년에 본 한산도 그렇고, 우리가 알고 있는 리더십은 대부분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후자가 마냥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저자는 실제로는 거래적리더십과 변혁적리더십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있도록 두 리더십을 결합하는 것이 매우 유효한 전략이며 링컨 역시 그렇게 행동하였다고 말한다. 링컨은 실리를 챙길 필요가 있을 때는 거래적 리더십을 발휘하였고, 원칙을 위해서는 변혁적 리더십을 활용하였다.

리더로서 모든 문제에 대해서 그는 두 가지 관점을 적극 활용하였다. 노예해방의 당위성을 주장할 때도 그러하였다. 노예제도와 관련된 헌법을 폐지하기 위해 투표하는 과정에서 표가 부족하다면 선거 보조금과 사면, 심지어 공무직이나 해외대사직을  두고 거래를 하기도 하였고, 남북전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이익을 강조하며 봉사하는 공명심을 대중에게 심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런 링컨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대중의 입장으로서는 칼로 자른 것처럼 명확한 입장"이 리더로서 필수 조건 인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리더는 지향하는 가치와 가치를 구체화한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더욱 더 확고해졌다. 지켜야할 것은 가치이지 방법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남자  vs 여자, 진보 vs 보수 등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하지만 본질적인 부분을 더욱 더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모두 지키고 싶어하는, 그리고 도달하고 싶은 가치와 그 의미는 어떠한 것인지 되짚어 보고 사회 전체에 Transformation을 가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동시에 자본주의에서 실리에 대해서는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쓸데없이 고귀한 척하는 부분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링컨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르곘지만, 적어도 As-Is에 대해서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크게는 국가의 문화, 작게는 회사, 가정 등의 문화를 바꿔놓을 수 있겠다. 데이터 조직에서는 Transparent Data와 Data가 정성적으로 구성하는 Context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액션일 수 있겠고 말이다. 여하튼 리더십에 이분법은 될 수 없다. 리더십에서 십(Ship)이 배를 의미하는 것인만큼 링컨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는 도착지까지 안전하게 싣는 것이 중요하지 왼쪽, 오른쪽이 중요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