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해녀의 부엌

공항 근처 호텔을 나와 비자림과 다랑쉬 오름을 다녀온 직후 땀에 젖은 몸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해녀의 부엌이었다. 오래된 건물 한켠에 붙어 있는 간판을 찾지 못해 지나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도를 봐도 저기 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공대생의 촉 덕분에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차를 건물 앞에 주차하고 나서 보니 바닥에 우묵가사리가 가득 널부러져 있고 항구에 배가 떠있는 것을 보니, 내가 호텔과 차라는, 집 근처에서도 익히 볼 수 있는 공간을 지나 비로소 바다에 왔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바다에 가득 절어져 버린 몸인지라, 평소에 비해 약간은 지친 마음으로 들어간 곳, 그 곳이 해녀부엌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정시에 문이 열린다는 작은 배너가 세워져 있었다. 다행히 1분 뒤에 열리는 지라 아내를 옆 의자에 앉혀놓고 주위를 돌아보면 될듯하였다. 해녀들이 쓰는 망과 부표같은 것들이 문 옆에 널부러져 있었다.

상념에 젖혀있을 때 문이 열렸다. 상당한 하이톤의 목소리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지정 좌석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내용은 대략 연극, 해산물 소개, 식사, 인터뷰로 구성이 된다 한다.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2시간이라니, 생각보다 시간이 빡빡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컨텐츠의 구성은 매우 단순한데 어떤 요소가 사람들을 이 곳, 해녀의 부엌으로 이끌었을까? 내심 가장 궁금한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연극을 보고난 뒤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연극의 감정선?, 흐름, 줄거리의 개연성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짧기도 했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였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바다, 하지만 떠날 수 없는 우리, 그리고 생명을 주는 바다의 모습을 한데 보여주었다. 그렇다. 구성은 간단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녀들만이 말할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감정적인 부분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관객 중 일부는 이 짧은 연극 속에서도 공감대를 크게 이뤄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에 나타난 실제 해녀분께서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출연해주셨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89세, 어머니를 보내드린지 반백년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관객 분들에게 여러차례 이야기했을 텐데, 그녀의 눈물은 반복되고 있었다. 부모님이란 그런 것인가. 나도 그러한 운명을 타고 난 것인가. 마음이 다소 숙연해지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짧지만 강렬한 연극을 뒤로한 채, 우리는 바로 약간의, 하지만 전혀 몰랐던 해산물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스토리는 강했다. 이 바닥에서는 어린 나이라고 하셨던 70세 해녀분과 젊은 배우 분의 해산물 소개는 홈쇼핑을 연상케하는 활기찬 설명과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덕분에 재미있게 소소한 웃음을 곁들여가며 들을 수 있었다.

이어진 저녁식사는 오랜만에 먹은 집밥과도 같았다. 사실 부모님을 떠나온 이후 가장 그리운 것이 집밥이다. 먹을 때마다 그 상황을 떠올릴만한 기억들이 함께 나타나는게 집밥이다. 아무래도 집에서 차로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 계시다 보니 그리워지곤 했던게 집밥이다. 저녁식사는 그러했다. 플레이팅이라고 하던가, 서빙되어 오는 음식의 플레이팅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날 것의 이야기를 가득 담아와서 그런지 풍성하고 매우 신선해보였다. 특히 물회, 갈치조림, 고순볶음은 정말 일품이었다. 아내도 음식이 맛있었는지, 평소 아내 답지 않게 담아온 음식을 먹고 또 먹었다.

마지막 인터뷰 시간이었다. 할머님이 우리가 보낸 질답에 답변하셨다. 2개 정도만 답을 하셨는데, 한 줄 한 줄로는 압축된 할머니의 삶을 들을 때마다 관객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고3을 지나쳐온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말하는 고3의 분위기는 다르다 하지만 사람으로서의 89년이라는 인생에 대한 노곤함과 무게는, 공감을 넘어서 위대함과 존경심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할머니의 마지막 노래까지 듣고 자리를 나서면서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1인당 얼마를 냈는지 물어보았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할머니 분들께 적절한 수입원이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다. 내가 위대하지 않고, 내가 세상을 바꿀만큼 대단하지는 않아 항상 한숨을 내쉬곤 하지만 그래도 오늘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그 분이 웃을 수 있도록 기여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 돈이 전혀 아깝지는 않았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