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아낀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동료의 캘린더로 간다
보고서를 10분 만에 끝냈다. AI가 초안을 뽑아주고 표를 채우고 결론까지 정리해줬다. 문제는 그걸 받은 사람이 두 시간을 썼다는 것이다.
Stanford Social Media Lab과 BetterUp Labs가 미국 정규직 1,150명을 설문했다. 지난 한 달 사이 이런 결과물을 받아봤다는 응답이 41%다. HBR은 이걸 "workslop"이라 이름 붙였다. 겉보기엔 전문적이고 매끄럽지만 뜯어보면 깊이도 맥락도 없는 AI 생성물을 가리킨다. 받은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고 빠진 맥락을 채우고 다시 정리하는 데 평균 1시간 56분이 걸린다. 1인당 월로 환산하면 약 186달러어치 시간이다. 부수 효과도 있다. 수신자의 53%가 짜증을 냈고 42%는 그걸 보낸 사람을 이전만큼 신뢰하지 않게 됐다.
이건 개인 차원의 이야기다. 조직 전체로 눈을 돌리면 더 이상한 그림이 나온다. NBER이 미국·영국·독일·호주의 시니어 경영진 약 6,000명에게 물었다. 69%가 이미 AI를 쓴다고 답했다. 정작 최근 3년간 노동생산성에 영향이 있었냐고 묻자 89%가 없다고 답했다. 고용에 영향 없다는 응답도 90%를 넘었다. 개인은 시간을 아꼈다는데, 회사 전체 숫자는 꿈쩍하지 않는다.
체감과 실측이 갈리는 사례는 또 있다. METR이 숙련 오픈소스 개발자 16명에게 실제 이슈 246건을 무작위로 배정해 AI 사용 여부를 비교했다. AI를 쓴 쪽이 19% 더 느렸다. 작업이 끝난 뒤 본인들은 20% 더 빨라졌다고 느꼈다. 시간을 재는 감각 자체가 어긋나 있다. Deloitte 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온다. 생산성이 좋아졌다고 체감하는 비율은 66%인데,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고 답한 쪽은 20%뿐이다.
성적표 없이 시험만 계속 보는 셈이다. 각자 답안을 빨리 썼다고 믿지만 채점해서 합산한 결과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보면
대부분 이 간극을 "아직 도구가 미숙해서" 혹은 "조직이 적응 중이라서"로 읽는다. 그런데 workslop과 NBER 수치를 나란히 놓으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AI가 아낀 시간은 사라진 게 아니라 이전됐다. 만드는 사람이 아낀 시간이 얼마든, 그걸 받아서 판별하고 되살리는 사람은 116분을 쓴다. 생산성 단절은 AI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비용이 발신자에서 수신자로 외부화되기 때문에 생긴다. 회사에서 AX나 AI 도입을 이야기할 때 재는 건 "몇 명이 AI를 쓰는가", "얼마나 빨라졌는가"다. 그 산출물을 받는 쪽의 검증·재작업 시간은 어느 대시보드에도 없다. 계측되지 않는 비용은 없는 비용으로 취급된다.
물론 이 그림에 반례도 있다. 같은 2026년에 나온 다른 NBER 논문은 노동생산성 이득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본다. 다만 그 이득이 고숙련 서비스업과 금융업에 몰려 있다는 단서를 단다. 이건 이 글의 논지를 뒤집기보다 오히려 보강한다. 이득이 잡히는 업종은 산출물의 품질을 즉시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가 수신자인 경우다. 검증 비용이 낮으면 이전된 시간이 다시 흡수된다. 검증 비용이 높은 조직은 다르다. 승인 단계가 길고 산출물을 읽는 사람과 만든 사람이 분리된 조직에서는 그 시간이 그대로 캘린더 위에 쌓인다.
세 가지만 남긴다
첫째, 개인의 작업 시간 단축과 조직의 생산성은 다른 숫자다. 둘째, AI가 아낀 시간은 없어지지 않고 검증하는 사람의 캘린더로 옮겨간다. 셋째, 그 이전 비용을 계측하지 않으면 도입 효과는 영원히 체감으로만 존재한다.
혹시 지금 회사에서 쓰는 AI 산출물의 검증 시간을 발신자가 아낀 시간과 나란히 재고 계신가요?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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