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건너뛴 코드는 언젠가 청구서로 돌아온다
이해를 건너뛴 코드는 언젠가 청구서로 돌아온다
"@claude 린트 고쳐." 이 한마디는 그 코드가 왜 그렇게 짜였는지 몰라도 칠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따지지 않아도, 원인을 추적하지 않아도 성립하는 말이다. 이해를 건너뛰고도 손을 댈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게 드문 장면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이동이라는 증거가 있다.
에이전트가 작성한 풀리퀘스트 3만 3,596건을 들여다본 연구가 있다. 이 중 84.0%(2만 8,246건)는 리뷰 기록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에이전트끼리 주고받은 게 전부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관여한 흔적이 남은 건 15.9%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결론은 뻔하다. AI가 쓴 코드는 리뷰를 안 받는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대목은 사람이 관여한 그 안에서 실제로 뭐라고 썼는가다.
사람이 직접 짠 코드가 올라온 풀리퀘스트에서는 사람이 남긴 코멘트 4,412건 가운데 93.56%(4,128건)가 코드를 평가하는 말이었다. "이 로직 틀렸다", "테스트 케이스 빠졌다" 같은. 에이전트를 통제하려는 말, 그러니까 "이거 고쳐", "린트 통과시켜" 같은 지시는 1.63%(72건)에 그쳤다. 평가가 압도적이고, 통제는 거의 없다.
같은 저장소에서 AI가 쓴 풀리퀘스트로 옮겨가면 이 비율이 뒤집힌다. 평가는 93.56%에서 65.53%(4,164건)로 내려앉고, 1.63%에 그치던 통제가 25.92%(1,647건)까지, 열여섯 배 가까이 뛴다. 사람이 남긴 코멘트 6,354건을 놓고 보면, 평가가 내준 자리를 대부분 통제하는 말이 채웠다.
이 연구의 저자들도 짚어둔 게 있다. 리뷰 기록이 없다는 게 사람이 아예 안 봤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고. 메인테이너가 흔적 없이 코드를 훑어봤을 가능성은 남는다. 다만 이 유보는 84%라는 숫자엔 걸려도 남아 있는 코멘트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사실까지는 건드리지 못한다. 사람이 실제로 손을 대며 남긴 말 자체가 평가에서 통제로 옮겨간 건 기록에 남아 있다.
통제는 이해를 건너뛴다
노션의 디자인 엔지니어 Geoffrey Litt는 에이전트가 검증을 점점 잘하게 되면서 사람의 자리가 "다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이건 당위다. 데이터에 남은 이동은 다르다. 평가에서 참여로 넘어간 게 아니라, 평가에서 통제로 넘어갔다.
통제와 참여는 다르다. 참여는 코드를 이해했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한다. 통제는 이해 없이도 가능하다. 앞서 본 "@claude 린트 고쳐"가 바로 그 통제다. 참여처럼 보이는 행위가 실은 이해를 건너뛰는 가장 편한 경로였던 셈이다. 계기판에 경고등이 뜨면 엔진을 열어보지 않고 경고등만 끄는 것과 같다. 손은 댔지만 안을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대가는 사라지지 않고 쌓인다
MIT 미디어랩이 에세이 작성 과제로 진행한 실험(참가자 54명, EEG 측정)에서 LLM을 사용한 그룹은 뇌 연결성이 가장 약했고 자기가 쓴 글에 느끼는 소유감이 가장 낮았고 방금 쓴 문장을 스스로 인용하지 못했다. 4세션 이후까지 이어진 효과는 참가자가 18명으로 줄어 강하게 주장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 실험이 이름 붙인 "인지 부채(cognitive debt)"라는 개념은 지금 벌어지는 일의 정체를 설명하기에 유효하다. 이해를 생략하고 받아들인 몫은 사라지지 않고 쌓인다. 그 청구서는 결국 "다음에 무엇을 판단할 것인가"를 묻는 순간, 판단이 필요한 바로 그 순간에 날아온다. 통제로 시간을 아낀 대가는, 정작 판단해야 할 때 낼 밑천이 없어 못 갚는다.
세 가지만 남긴다
리뷰는 사라진 게 아니라 성격이 바뀌었다. 통제는 참여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이해를 생략한 채 쌓은 몫은 언젠가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청구서로 돌아온다. 사전 이해를 강제하는 장치 하나가 방향으로는 남아 있다. 팀에 리뷰를 요청하기 전에, 그 변경을 본인이 설명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만든다. 그 이상의 해법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혹시 최근에 리뷰 없이 승인 버튼만 누른 PR이 있다면, 그 코드를 지금 설명할 수 있으신가요? 한번 떠올려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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